<1987>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6월항쟁 영화 <1987>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6월항쟁 영화 - 돈박의 건강한 인생만들기
카테고리 없음 / / 2022. 12. 19. 15:51

<1987>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6월항쟁 영화

1987

1987, 박종철 치사사건의 진실을 파헤쳐라

 급박하게 구급차가 건물의 안으로 들어간다. 의사는 온몸에 묻어있는 물기를 닦아내고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사망한다. 환자의 사망원인은 경찰 조사를 하던 중 심한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였다. 박 처장(김윤석)은 부하들에게 물고문하다가 대학생을 죽이게 된 것이 뭐가 대수냐며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 공안검사인 최 검사(하정우)는 근무를 서는 중 박 처장의 부하가 찾아와 서류를 내밀며 오늘 안으로 빨리 화장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의감으로 검사 임무를 수행하는 최 검사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부검을 하고 확인을 해야만 도장을 찍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박 처장은 빨리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지만 최검사의 반대로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단순 쇼크사로 몰아가기를 원했지만 기자들까지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그들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부검 결과는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로 판정되었다. 경찰은 직접 고문한 형사들로 하여금 꼬리 자르기를 하여 사건을 무마시키고 한다. 박 처장의 말을 믿고 수사한 조반장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자신들을 내버린 박 처장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조반장은 지금까지 고문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억울함을 계속 토로하는 것은 이 일을 시킨 건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도관이었던 한병용(유해진)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부탁해 이 사실을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정남(설경구)에게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한다. 연희는 이한열의 도움으로 데모를 진압하는 경찰로부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한열은 연희에게 지속적으로 접촉하여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노력한다. 얼마 뒤 연희는 가판대에 있는 신문에서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진을 보게 된다. 이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연희는 시청광장으로 뛰어나간다. 그곳에는 버스기사들과 택시기사들이 차들을 세워 길을 막고 있고 평범한 회사원들과 주부, 학생들이 버스 위로 올라가 시위를 하고 있다. 광장을 꽉 메운 시민들을 본 연희는 눈물을 흘리며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구호를 함께 외친다.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을 맺게 된다. 

영화로 보는 그 시대의 민주화 운동이야기

 이 영화는 1987년 1월 서울대 박종철 학생이 경찰 조사 중 물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경찰은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고 하였지만 그 당시 검시를 담당했던 중앙대 용산병원의 오연상 박사와 부검을 하였던 국과수 황적준 박사가 경찰의 협박을 뿌리치고 진실을 발표함으로써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고문치사를 직접 시행한 경관 2명이 구속되었지만 경찰 고위 관료들은 처벌받지 않고 그 상황을 빠져나갔다. 전두환 정부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였고 민정당에서 6월 10일 대통령 후보 지명을 강행한다. 명동 성당에서는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축소 은폐되었음을 발표하자 여론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이로 인하여 전두환 정부에서 국무총리, 안기부장, 내무장관, 법무장관, 경찰청장 등 새로 교체하였지만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어려웠다. 6월 10일 노태우 대선후보 지명일에 맞춰 규탄대회를 열기로 계획하고 6월 9일 연세대에서 시위가 일어나는데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사진이 다음날 신문에 보도되자 학생, 직장인 할 것 없이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에 저항을 하기 시작한다. 모든 시민들이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전국 도시 곳곳에 규탄대회가 열렸다. 결국 전두환은 6월 항쟁에 굴복하게 되고 시민들이 승리하게 되었다 6월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 실시, 김대중 사면복권, 언론 자유 창달, 지방자치제 실시, 정당활동 보장 등 발표하게 되었고 6월 29일에 모든 것이 수용되었다. 시민들에게 민주화의 불꽃을 터트려준 이한열 군 장례식장에 서울에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집하여 그를 죽음을 애도하였다. 

영화를 통한 6월 항쟁의 주관적 감상평

 우리는 자유와 상식이 인정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사건과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4.19 민주화 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쳐 6월 민주항쟁까지 대한민국의 중요한 민주화 사건들이 있었다. 대통령 간선제를 통하여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력으로 스스로 대통령 자리를 만들어냈다. 호헌조치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그의 욕심은 민주화 열망을 지닌 시민들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조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6월 항쟁으로 인해 군사적 독재정치는 종식하게 되었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 역사에 관한 영화를 꾸준히 시청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전반적인 이해도와 중요성을 깨달아 이 땅에 영원히 민주주의가 정착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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