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은 한국이 IMF체제에 금융지원을 받은 날
대한민국 경제사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치욕적인 날이 바로 1997년 11월 21일이다. 그날 국제통화기금인 IMF로부터 구제금융 신청을 하였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렸던 경제 우등생 대한민국이 사실상 부도 국가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회생 능력이 없어 IMF가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경제판 경술국치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금융기관들이 부실하였었고 기업들은 차입위주의 방만한 기업경영을 일삼았었다. 종합금융사들은 해외 자금을 단기로 빌려와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었고 차입위주로 운영했던 기업들은 그 당시 부채비율이 500%를 넘을 정도로 방만한 기업경영을 일삼았었다. 한국의 경제구조는 점차 취약해지기 시작하였고 그 당시 많은 많은 대기업들이 연쇄부도를 당하였다. 국내 금융시장 불안에 의해 단기적인 투기 외화자본들이 급속이 유출되면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환율 또한 급등하게 되었다. 이처럼 환율이 급등하면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다. 나랏빚이 1500억 달러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외환보유고는 고작 40억 달러채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데 IMF에서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무리한 조건들을 요구하였다. 경제구조조정을 요구하고 금리를 인상하여 건강하지 않은 기업들을 정리함과 동시에 경제를 개방하여 외국자본의 진입을 허용하라는 조건을 내걸었었다. 그 결과로 금리가 30%까지 치솟게 되었고 채무가 과도한 기업들은 줄도산당했으며 경제 활동하였던 가장들은 부도와 파산으로 인해 고통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젊은 남자들은 IMF를 조금이라도 회피하기 위하여 군입대를 지원하였었고 일터를 잃은 직장인들은 저임금 고위험 일자리에서 혹독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었다. 그만큼 IMF는 한국의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준 최악의 경제 역사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한국경제위기 이야기
한국 경제가 화황이던 시절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이었던 한시현(김혜수)은 한국경제가 위기가 올 것을 직감한다. 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윗선에 보고를 하게 되지만 철저하게 무시를 당하게 되고 정작 한국경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신호들을 여기저기서 감지되었을 때 비로소 급하게 대책팀을 꾸리게 된다. 금융회사에 다녔던 윤정학(유아인)은 라디오에서 듣고 점차 경기가 좋아지지 않음을 직감하게 되고 IMF 위기를 역이용하여 돈을 벌기 위해 공모를 하게 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갑수(허준호)는 평범하게 회사를 운영하다 대형 백화점과 어음거래를 하며 돈을 많이 버는 장밋빛 꿈을 꿈꾸고 있었다. 한시현 팀장은 은행을 돌아다니며 현장조사를 시작하면서 경제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알게 된다. 정학은 이런 분위를 미리 파악하여 투자자들을 모아 달러를 사라고 권유하지만 국가가 망해야 환율이 오르는데 말도 안 된다며 다들 정학을 말에 귀담아듣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학의 말대로 외국인들은 자금을 회수하면서 점차 환율이 오르기 시작한다. 점점 상황이 악화되자 결국 파산하는 기업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갑수가 계약했던 미도파 백화점도 문을 닫게 되면서 계약이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는데 이미 생산에 돌입하였고 어음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결국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기업들도 줄도산 하기 시작하고 결국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긴급 면담을 요청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매우 악화되었다. 결국 IMF 구제 금융을 받자는 결론이 나오지만 한시현은 IMF는 절대로 안된다며 강하게 반대를 한다. 윤정학은 달러를 이용하여 번 돈으로 인생을 바꿀 시점이 되었다 생각하고 폭락한 알짜배기 부동산을 사모으기 시작한다.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고 IMF조건을 전부 받아들인다. IMF의 조건은 외국에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부실한 기업들을 구조 조정하라고 조건을 내건다. 그 이후 대한민국은 많은 기업들이 파산되고 수많은 실직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갑수는 괴로워하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포기하게 된다. IMF 사건이 있고 난 20년 뒤 윤정학은 그 시기를 기회로 삼아 결국 JH홀딩스의 회장이 되어 인생 역전한 삶을 보이며 영화는 결말을 맞게 된다.
한국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고 국민들이 단결하여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냈다.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국민들은 금을 내다 팔아 금으로 달러를 사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금 모으기 운동이다. 금 모으기 운동하는 기간 동안 22억 달러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 돈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IMF를 조금씩 극복해나간 것이다. IMF 이후 노동의 유연성이 증가되었다. 좋게 말하면 유연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용의 안정성이 사라진 것이다. 실업률과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났다. 언제든지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환경이 그 당시에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이 불안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저력은 어려울 때 어김없이 나타난다. 외환위기 이후 다시 한번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저력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시는 IMF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권과 기업, 그리고 국가가 항상 위기를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IMF 시기를 반면 삼아 경제적으로 튼튼한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되기를 희망한다.